[단독] 100년간 실종됐던 클림트 '마지막 여인'…유럽 경매 최고가 찍을까

입력 2024-01-25 19:00   수정 2024-02-01 16:04


19세기 말 문화 혁명가이자 오스트리아 빈의 모더니즘을 이끈 예술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사진). 클림트 연구자들 사이엔 지난 100년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25장의 흑백 스케치로만 남아 있는 한 여인의 초상이었다.

클림트 말년의 유작이자 화려한 색을 입혀 완성한 ‘리제르 양의 초상’(Portrait of Frulein Lieser, 1917)은 세상에 딱 한 번 보여졌다. 1926년 5월 오스트리아 노이에갤러리에서의 전시회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클림트가 뇌졸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지 8년 후 잠시 전시회에 나온 뒤로 그림의 행방은 묘연했다. 빈 미술계는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간주했다.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한 뒤 오스트리아는 나치 정권의 탄압과 전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고, 다수의 클림트 그림이 해외로 반출·훼손되거나 경매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100년간 사라졌던 리제르 양의 초상이 25일 빈의 경매회사 임 킨스키에서 공개됐다. 오는 4월 24일 경매를 앞두고 소수의 컬렉터와 일부 미디어에 선공개한 것. 이 그림이 공개되자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이 들썩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당연히 해외 반출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 지난해에 이어 클림트의 그림이 또다시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깰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지난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부채를 든 여인’(Lady with a Fan)이 1억800만달러(약 1440억원)에 팔리며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점을 감안하면 이 그림의 추정가는 최소 1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100년의 미스터리…그림 속 여인은 누구?

이 그림의 제목 중 ‘프로일라인’은 오스트리아어로 ‘젊은 숙녀’라는 뜻이다. 실제 모델인 리제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제를 대표하던 한 기업가 가문의 여인이었다. 그림을 의뢰한 이는 리제르 가문의 유명한 예술 후원자로 ‘릴리’라 불리던 여성. 오스트리아 최초의 기계식 섬유·방직 공장을 운영하던 리제르 가문의 릴리는 ‘빈의 뮤즈’이자 클림트의 첫사랑이기도 한 알마 말러의 친구였다. 초상화 속 ‘리제르’는 릴리 리제르의 두 딸(헬레나, 애니) 중 한 명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림을 그릴 당시 모델의 나이가 스무 살도 채 안 됐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출판물 기록에는 초상화 주인공의 실명 대신 ‘the sitter’(앉아 있는 사람) 정도로 돼 있다.

빈 부유층의 딸을 그린 이 그림은 100년간 어디에 있었을까. 1926년 클림트 회고전을 마친 뒤 이 그림은 리제르 가문 소유의 한 별장에 걸려 있었다. 먼 친척으로부터 2년 전 그림을 물려받은 현 소유자는 “기억하건대, 1965년부터 그 집의 거실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경매에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계와 평단, 클림트 그림의 소유자 등이 연구와 협의를 거쳐 리제르 가문의 법적 후계자와 합의하며 지난해 10월 23일 오스트리아 연방 기념물 당국으로부터 그림 수출에 대한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클림트의 불후의 명작” 평가받는 이유

클림트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화가였다. 당대 가장 잘나가는 초상화가였지만, 그에게 의뢰하면 언제 그림이 완성될지 알 수 없었다. 리제르 양의 초상 역시 1917년 4~5월에 모델이 된 여인이 9회에 걸쳐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중요한 건 이 그림엔 클림트의 사인이 없다. 초상화를 완성할 때 배경을 가장 마지막에 완성하는 클림트의 특성상 전문가들은 “리제르 양의 초상은 미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머리, 얼굴, 손 등은 완벽하게 완성돼 있지만 그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배경을 좀 더 정교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뜻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이 그림을 위해 그린 25장의 스케치는 보면 앉은 자세, 옆으로 돌려 앉은 자세 등 다양한 포즈와 구도로 습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공예와 장식미술에도 심취해 있던 클림트는 이 초상화에서 섬세하고 대담한 선을 사용해 부드럽게 흐르는 윤곽선을 만들어 전신에 걸쳐 리듬감 넘치는 윤곽을 그려냈다. 정면을 바라보는 포즈의 3/4 초상화는 당시 다른 초상화에서도 보기 힘든 구도다. 위쪽 가장자리에서 약간 떨어져 비석처럼 솟아오른 인물은 전면에 똑바로 배치돼 거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경은 반짝이는 붉은색으로, 얼굴의 뺨 역시 붉게 물들여 눈가와 머리칼의 푸른 색조와 대비되는 보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화려한 붉은 오렌지색 배경과 어깨에 두른 숄의 푸른 색상은 클림트의 후기 그림이나 초기 작품에서 아주 보기 드문 색상이다. 또 이 여인이 입고 있는 옅은 녹색의 드레스 역시 기존 클림트의 팔레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색이다. 초상화 속 얼굴 특징은 아주 자세히 묘사돼 있다. 눈썹이 우아하게 구부러진 모양, 입술의 관능적인 형태와 눈동자의 반짝이는 모습 등은 1910년대 그가 천착했던 여인들의 초상화(아말리에 주커칸들, 유지니아 프리마베시 등)의 그것도 닮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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